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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ch's monologue/life log

이사는 아무리 많이해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98년 말에 집 나와서 지금까지 2년혹은 1년에 한번씩 이사를 했다. 


사실은 그 보다 더 된다.


얹혀 살다가 고시원에 들어갔다가 보름정도 묵은 후 다시 이사.. 이런식. 


침대 없이 살다가 침대가 생겼고, 티비 없이 살다가 티비가 생겼고.. 쓸데 없이 DVD플레이어를 샀다가 몇번 안보고 장식용이 되어 있다. 


가구는 여전히 허름하고, 남에게 얻은 침대에서 누가 사준 침대로 업그레이드도 되었고, 무려 선물받은 4인용 식탁까지 생기고..


일년에 많게는 100권이상 사들이는 책 덕분에 책장은 사지 않고는 더 못버틸 지경이 되었다.


원룸, 한달 더부살이, 보름 고시원, 원룸, 원룸, 원룸, 많이 큰 원룸, 서초동에 으리으리한 오피스텔..


현재 대규모 공업->상업지구의 기숙사 같은 오피스텔까지. 


최상의 삶의 질은 역시 서초동 빌트인 냉장고에 빌트인 세탁기가 딸리고 샤워부스 까지 있는 분에 넘치는 집이었지만. 


지금 상태도 나쁘지 않다. 


내일은 아파트로 이사간다.


벌어놓은 돈은 별로 없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엄니가 투척한 돈으로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어느덧 내 짐은 2.5톤으로는 어림도 없는 정도가 되었고, 너덜너덜한 가구는 (누가 버린걸 길에서 주워온 것, 마트에서 낑낑 들고 온 것 포함) 다 갈아치워 버리고 싶지만


이 거지 근성에. 한쪽다리가 균형을 못잡는 녀석이 아니면 굳이 새로 사지 않고 그냥 닦아 쓰기로 했다. 


문짝 떨어진 협탁이나 합쳐서 5만원 주고 산 티비 대 겸 서랍장은 정말 어떻게 해 버리고 싶다. 


골목에 비맞고 서있던 책장은 신난다 신난다 주워왔는데 상판이 꽤 기울었다.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인데, 주워온 가구도 감지덕지하며 살고 있는 것이.. 


역시 그 포춘텔러 말 처럼, 어디 돈 막 쓰지도 못할거고, 없으면 안쓸거고, 있으면 적절히 쓸것이고, 돈 필요 할 때 되면 어디서 돈이 생길것이다 하던데. 


내 성격을 잘 알아 맞힌건지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내일 이사를 간다.


방도 두개나 있고 거실도 있고 욕실에 욕조도 있는 멋진 전세집으로 간다.


층은 4층이라 앨리베이터를 기다리기 싫으면 계단으로도 갈 수 있고, 사다리차도 쓸 수 있다. 


거금들여 아줌마 아저씨를 불러 청소도 해놨다. 소독도 했다. 


계약에 확정일자 날인에 정산에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사는 아무리해도 얼른 뚝딱 도사가 되지 않는다.